1970년대 가요계를 대표했던 가수 옥희가 오랜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특유의 폭발적인 가창력과 수많은 히트곡으로 사랑받았던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음악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가요계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의 별세 소식에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다.
가수 옥희(본명 김광숙)는 지난 20일 오후 경기도 수원의 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눈을 감았다. 향년 73세다.
유족과 가까운 지인들에 따르면 고인은 신장암 진단 이후 치료와 투병을 이어왔으며 가족들이 임종을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과 오랜 우정을 이어온 가수 장미화 역시 마지막 면회를 다녀온 뒤 비보를 접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옥희는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악극단에서 활동하던 영향 속에서 성장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음악과 가까운 환경에서 자랐다.
중학생 시절 가수 현미와의 인연을 계기로 미8군 무대에 서게 되면서 본격적인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68년에는 여성 그룹 ‘서울시스터즈’의 리더로 데뷔했다.
당시 서울시스터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비롯한 해외 무대에서도 활동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해외에서는 ‘키티김’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현지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해외 활동을 마친 뒤 귀국한 옥희는 1974년 솔로 가수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대표곡 ‘나는 몰라요’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단숨에 대중적인 스타로 자리 잡았다.
이후 ‘눈으로만 말해요’, ‘아 그날이’, ‘이웃사촌’ 등 다양한 히트곡을 발표하며 1970~1980년대 가요계를 대표하는 여성 가수로 활약했다.
당시 뛰어난 가창력과 무대 장악력은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됐다.
옥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전 복싱 세계 챔피언 홍수환과의 관계다.
두 사람은 1970년대 후반 만나 많은 화제를 모았고, 1978년에는 딸을 얻었다.
이후 결별의 시간을 겪었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인연을 이어갔다.
1995년 재결합 소식은 당시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았으며, 영화 같은 러브스토리로 회자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홍수환이 병마와 싸우던 옥희의 곁을 지키며 간호에 힘쓴 것으로 알려져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고인은 건강이 악화된 상황에서도 무대를 향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
올해 3월에도 KBS ‘가요무대’에 출연해 노래를 선보이며 팬들과 만났다.
오랜 세월 노래를 사랑해 온 그의 진심이 마지막 방송에서도 고스란히 전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옥희는 단순한 인기 가수를 넘어 한국 대중음악 성장 과정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걸그룹 활동을 통해 해외 무대에 진출했고, 솔로 가수로서도 성공을 거두며 시대를 대표하는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지금의 K팝 글로벌 진출이 본격화되기 훨씬 이전부터 해외 공연을 통해 한국 음악을 알렸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오랜 세월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가수인 만큼 그의 별세 소식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가수 옥희가 신장암 투병 끝에 향년 73세로 별세했다.
‘나는 몰라요’, ‘눈으로만 말해요’, ‘아 그날이’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그는 한국 가요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겼다.
최근까지도 무대에 대한 애정을 이어갔던 만큼 그의 음악과 열정은 오랫동안 팬들의 기억 속에 남을 것으로 보인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될 예정이며 장례는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치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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